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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에 다시 생각해보는 한국전쟁
  글쓴이 : 이재봉     날짜 : 08-06-13 10:08     조회 : 2396    
 

6월에 다시 생각해보는 한국전쟁

  

 6월엔 기념일이 많다. 6.6현충일, 6.10민주항쟁, 6.15남북공동선언, 6.25전쟁, 6.29선언.... 이 가운데 평화와 통일 문제와 관련해서는 6.15와 6.25를 들 수 있는데, 대체로 진보세력은 6.15를 대대적으로 기념하며 남북화해를 주창하고 보수세력은 6.25를 잊지 말자며 남북대결을 부추기기 일쑤다. 앞으로는 진보세력이 6.25에 대해서도 기념해보고 보수세력은 6.15에 대해서도 기념해보며 양쪽의 생각과 입장을 좁혀나가는 노력을 해보는 게 어떨까? 6.15를 기념하든 6.25를 기념하든 이 땅에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정착되면서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물론 전쟁에 따른 충격이나 상처는 최소한 30-40년간 지속된다는 말이 있듯이, 6.25를 기념하면 북녘에 대한 원한이나 적대감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그러나 진보든 보수든 전쟁의 재발을 원하는 사람은 전혀 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남쪽과 북녘 사람들이 언젠가는 더불어 살아야 할 형제요 동포라는 점을 유념하면서 6.25를 기념하면서도 남북 사이에 대결을 부추기기 보다는 화해를 추구하는 정신을 가질 수는 없을까. 이렇게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발상의 전환’을 위해 6.25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1. ‘6.25동란’, ‘6.25사변’, ‘6.25전쟁’이라는 명칭에 관해

  우리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이름짓는데 날짜를 포함하기 좋아한다. ‘3.1절’ ‘4.3항쟁’ ‘4.19혁명’ ‘5.16쿠데타’ ‘8.15해방’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5.16쿠데타나 6.15선언 또는 8.15해방처럼 어떠한 일이 하루에 끝났다면 이런 명칭에 이의를 달기 어렵지만, ‘4.3항쟁’이나 ‘4.19혁명’ ‘6.25전쟁’에서처럼 사건이 지속되었다면 어느 특정한 하루를 잡는 게 애매하다. 특히 ‘6.25전쟁’은 몇 달도 아니고 몇 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6월 25일 갑자기 시작된 것도 아니다. 늦어도 1945년 9월부터 1950년 6월 이전에 이념 갈등과 투쟁 과정에서 약 10만명이나 희생되었기 때문에 전쟁은 6월 25일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개 전쟁을 “1,000명 이상이 죽은 싸움”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1949년부터는 38선 일대에서 양쪽 군대가 격렬하게 충돌한 적이 많았으며,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수백만 명이 죽었는데 이 과정을 모두 ‘6.25’라고 부르는 게 적절할까. 나는 ‘6.25’라는 이름에 어떠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공산 괴뢰군이 쳐들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주입시키기 위한 의도 말이다.

  참고로, 북녘에서는 이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제국주의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남조선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뜻이다. 전쟁의 중요한 당사자였던 미국에서는 ‘한국전쟁 (The Korean War)’이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도와준 전쟁 (抗美援朝戰爭)’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서양의 한 학자는 ‘한국에서의 전쟁 (War in Korea)’이라고 이름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전쟁’이라고 하면 남북한 사이에서만 일어난 전쟁이라는 인상을 주기 쉬운데, 전쟁이 일어난 곳은 한반도지만 전쟁의 주체는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전쟁’이라고 불러야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베트남전쟁 (The Vietnam War)’이나 ‘이라크전쟁 (The Iraq War)’이란 명칭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쟁의 핵심 당사자인 미국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베트남을 침략한 전쟁 및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전쟁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묘사하려면,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도 표기했듯, ‘베트남에서의 전쟁 (War in Vietnam)’ 및 ‘이라크에서의 전쟁 (War in Iraq)’이라고 써야하지 않을까.


2. 남침인가 북침인가

  여기서 ‘남침’은 북녘이 먼저 남쪽을 침략했다는 뜻이고 ‘북침’은 남쪽이 먼저 북녘을 침략했다는 뜻이다. 한자 공부를 거의 하지 않은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는 ‘남침’은 “남한이 먼저 침략한 전쟁”으로, ‘북침’은 “북한이 먼저 침략한 전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한국전쟁이 1945년의 분단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남침이 먼저냐 북침이 먼저냐 따질 수도 없고 별 의미도 없다. 그러나 1949년부터 38선 근처에서 종종 일어났던 ‘국지전’이 1950년 6월 25일 북녘의 남침으로 ‘전면전’으로 확대된 것은 분명하다. 북녘에서나 중국에서는 지난날 ‘북침’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고, 남쪽에서도 그렇게 믿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 같은데, ‘6.25’는 확실하게 ‘남침’이란 말이다.


3. 통일전쟁인가 침략전쟁인가

  둘 다 맞다. 6.25는 북녘이 남쪽을 적화통일하기 위해 기습침략을 감행한 전쟁이었으니 통일은 목표였고 침략은 수단이었다. 몇년 전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6.25를 ‘통일전쟁’이라고 했다가 온갖 비난과 처벌을 받은 적이 있는데, 6.25가 통일전쟁이 아니라는 것은 억지요 궤변이다. 수단과 방법이 나빴어도 통일을 위한 전쟁이었고,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가 달랐어도 통일을 위한 전쟁이었다. 1950년대에는 남쪽에서나 북녘에서나 무력에 의한 통일을 추구하다가, 남쪽에서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북녘에서는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것이다. 앞으로는 남쪽에서든 북녘에서든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에 의한 통일은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 게 중요하지, ‘통일전쟁’이냐 아니냐라는 말도 되지 않는 시비는 없어져야 한다.


4. 미국과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미국은 남쪽을 살렸고 중국은 북쪽을 구했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자신들이 추구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각각 남쪽과 북녘에 군대를 보냈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2-3개월만에 끝나고 사회주의로의 통일이 이루어졌을 것이며, 중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5-6개월만에 끝나고 자본주의로의 통일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두 나라의 개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남북이 각각 자신의 체제를 지킬 수 있었다는 점이요,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빨리 끝났을 전쟁이 확대되고 그에 따라 희생자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몇년 전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6.25를 ‘통일전쟁’이라고 부른 것보다 미국의 개입이 없었으면 전쟁이 빨리 끝났을테고 사람들이 덜 죽었을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더 큰 비난과 처벌을 받았는데,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유명한 정치학자가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1950년부터 1952년까지 한국전쟁에 미군포병 연락장교로 참여했다가 1968년 The Korean Decision (한글 번역본: 󰡔미국의 한국 참전 결정󰡕) 이라는 책을 펴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글렌 페이지 교수가 1977년 자신의 책을 스스로 비판하며 하나의 폭력에 대해 또 다른 폭력으로 대응한 것을 반드시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반성했던 것이다. 미국의 개입 때문에 중국까지 참전하여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남북 양쪽에서 수백만명이 죽게 된 것을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참고로, 지금은 남쪽이 북녘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풍요롭다. 쉽게 말해 체제 경쟁은 끝났다. 그러기에 남쪽 사회에는 그 때 수백만명이 죽었을지라도 사회주의 체제에 흡수되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1940-5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북녘이 남쪽보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더 안정되어 있었고 훨씬 개혁적이었으며,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 체제를 원했었다. 따라서 지금의 기준이 아닌 당시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다면 엄청난 인명의 희생을 막고 사회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바랐을 사람들이 많았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5. 전쟁의 경과와 결과

  한국전쟁이든 6.25든 1953년 끝났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쟁이 ‘실질적으로는’ 끝났을지라도 ‘법적으로는’ 종결되지 않았다. 55년전에 맺어진 것은 전쟁을 쉬거나 멈춘다는 휴전 또는 정전협정이었지, 전쟁을 끝내거나 평화를 추구하자는 종전 또는 평화협정이 아니었다. 55년이나 지나도록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남한과 중국은 1992년 적대 관계를 풀었지만, 북한과 미국은 아직 국교를 정상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남북관계는 불안정하다. 따라서 진보세력이든 보수세력이든 앞으로 6.25를 생각하거나 기념하면서, 전쟁을 언제 누가 왜 먼저 시작했는지 따지면서 상대방에 대한 원한이나 적대감을 키우기보다는 왜 아직까지 휴전/정전협정을 종전/평화협정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는지 반성하면서 어떻게 평화와 통일을 진전시켜야 할지 고민해보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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