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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장로와 감옥의 목사
  글쓴이 : 이재봉     날짜 : 08-09-09 10:49     조회 : 2080    

 

  한상렬 목사님! 오전에 구치소에서 뵌 뒤 오후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 편지를 씁니다. 익산행 기차 안에서 두어 시간 동안 책 한 쪽 읽지 못하고 머릿속에 목사님만 떠올리면서 이 글을 구상했거든요. 만나자마자 얘기했듯이,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 목사들에게 상당한 대우를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감옥으로 보내다니 ....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마 목사님에 대한 장로의 배려인 것 같기도 합니다. 평화니 통일이니 민주니 자주니 외치며 온갖 집회와 시위 때마다 맨 앞줄에 서서 바쁘게 활동하시니 몸을 다칠까봐 감옥에서 푹 쉬면서 건강 좀 챙기라고 배려한 게 아닐까요? 더구나 친북이나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감옥에 보낸 게 아니라 '촛불시위 배후'라는 죄목으로 가두었으니 엄청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일을 저지른 사람처럼 만든 셈이잖아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장로가 아주 고단수의 정치적 고려까지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요즘 장로 대통령을 등에 업고 극단적 언행을 일삼는 목사들과 제철 만난 듯 선교와 전도에 힘쓰는 정부 관리들 때문에 종교 차별이 문제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내다보았을 그 장로는 불만과 항의를 표하는 스님과 불교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꾸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내가 스님들을 탄압한 것도 아니고 목사를 구속시키기도 했는데 무슨 종교 차별을 한단 말입니까?"

  

  그건 그렇고, 전주에서 3시간 이상 달려온 이강실 목사도 함께 갔는데, 촛불시위의 앞잡이를 했든 뒤에서 조종을 했든 천벌을 받아야 할 만큼 대역(大逆)을 저지른 건 아닌 터에, 부부가 두터운 유리벽을 가운데 놓고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채 10분 만에 면회를 끝내야 하는 게 너무 비참하더군요. 우리의 대화를 일일이 받아 적어야 하는 교도관도 무척 측은하고요.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인가요? 하고 싶지도 않고 보람도 느끼지 못할 일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하겠지요. 그러기에, 그 장로에 관해 얘기하면서 혹시 '대통령 모독죄'로 걸려들지 않을까 은근히 겁을 먹기도 했습니다만, 교도관이 설마 그런 말까지 고자질하겠느냐는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목사님! 10여 년 전 저를 통일운동으로 이끌어주셨으니 목사님은 평화운동과 통일운동의 스승이요 선배입니다만 제가 감옥 후배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며칠 전 이강실 목사를 만나자마자 남편을 감옥에 보내놓고도 그렇게 활짝 웃을 수 있느냐고 핀잔 섞인 농담을 건넸는데, 제 아내는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지만 옥바라지만큼은 못할 것 같다고 하거든요. 그러나, 다음에 올 때는 겨울 이불을 가져와달라는 목사님의 부탁에 "금방 나오리라 생각하지 않고 여기서 겨울까지 날 준비를 하느냐"는 이목사의 근심 어린 반문을 들으며, 이목사 역시 겉으로는 강인한 활동가 같아도 속으로는 가냘픈 아내라는 생각을 품게 되더군요. 나라의 평화와 민족의 통일을 위해 그리고 더욱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식조차 갖기를 거부하며 온 몸을 바쳐온 두 분이 온 사회의 존경을 받기는커녕 왜 이다지도 험한 핍박을 받아야하는 걸까요?

  

  구치소를 나오는 길에 이목사 손을 꼭 잡으며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자고 했습니다만, 그 장로가 목사님을 금세 풀어 주리라는 기대를 품지는 않습니다. 왜냐고요? 요즘 남북이 험악하게 대치하는 가운데 그 장로는 북녘에 올 여름 홍수가 한 번 더 나면 김정일이 굴복하리라는 발상을 하며 기상청에 일기예보를 문의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아, 정말 믿기 어렵습니다. 세상에! 장로가 그렇게 비인도적인 생각을 하다니요. 북녘에 홍수가 나든 가뭄이 들든 불쌍한 인민들이 굶어죽지 김정일을 비롯한 통치자들이 고통당할까요?

  

  마침 어제 저녁 서울에서 저의 「두 눈으로 보는 북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는데, 목사와 신학자를 포함한 기독교인들이 많이 참석한 자리에서 위 얘기를 소개하며 강연을 했습니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랄 수 있는 박형규 목사, 오랫동안 월드비전을 이끌어 오신 오재식 선생, 이화여자대학교 교목실장과 세계YMCA 회장 등을 지내신 서광선 목사/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쳐오신 노정선 목사/교수 .... 이런 원로 목사들과 신학자들 앞에서 항의하듯 울분을 토했지요. 목사님들과 신학자들이 어떻게 교육을 해오셨기에 장로라는 사람이 그토록 끔찍한 발상을 하게 만들었느냐고요.

  

  출판기념회 얘기를 꺼낸 김에 자랑 겸 한 가닥 희망을 품게 된 사연도 전하겠습니다. 제 주제강연 뒤에 40대 여성으로 보이는 탈북자가 지정토론자로 나섰습니다. 북녘에서 약사로 지내다 남쪽에 와서 다시 약학 공부를 하고 있다는데 통일교육원 안보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자신은 북한을 저주하고 증오해 왔다면서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있는 강정구 교수가 친북적인 발언을 많이 해서 아주 미워했는데 마주보고 있으니 당혹스럽다는 얘기로 토론을 시작하더군요. 그러나 "북한에 대해 편협하고 옹졸하며 반대적인 입장과 사고만을 일삼았던 저의 인식 개조에 전환점을 주신 이재봉 교수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면서, 앞으로 '평화 전도사'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토론을 마쳤습니다. 무슨 이유로든 북녘을 증오하던 탈북여성이 제 책을 통해 '평화 전도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갖게 되었으니 평화학자와 평화운동가를 자처해온 저에게 이보다 더 큰 영광과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제 행사에서 사회를 맡은 서광선 목사/교수도 탈북자 1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녘에서 태어난 뒤, 6.25 때 아버지가 반공목사라는 이유로 북녘 군인들에게 총살을 당한 비참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지만, 오래 전부터 그 원한과 증오를 뛰어넘어 평화와 통일운동에 앞장서고 계시는 70대 어른이거든요. 그러나 아무리 목사라지만 자신의 선친을 총살한 북녘 체제나 통치자들을 쉽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두 마음으로 읽는 이재봉 교수의 「두 눈으로 보는 북한」"이라는 장문의 서평을 통해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습니다. "내 머리로는 이재봉 교수의 책을 이해하고 북한의 사정을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나의 상한 마음과 굳어질대로 굳어진 내 가슴은 풀기가 너무 너무 힘들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목사님! 북녘을 증오하며 남쪽으로 탈출해온 두 아이의 엄마가 '평화 전도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총살당한 반공목사의 아들이 원한을 뛰어넘어 북녘과의 화해협력을 주장하며 평화통일운동을 해오고 있는데, 청와대의 장로도 머지않아 회개하리라 '확실하게 믿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로 제 강연을 끝냈지요.

  

  "대통령 임기가 앞으로 1,630일 정도 남았는데 이렇게 많은 날짜를 손꼽으며 기다리면 스트레스 받기 쉽습니다. 벌써 반년이 더 지났으니 이제 4년 반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시다. 1/10이 지났으니 9/10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이 자리에 목사님들 많이 계시는데, 앞으로 4년 반 또는 9/10 남은 임기 동안 그 장로님이 더욱 열린 마음과 뜨거운 가슴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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