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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간 대화, 그 한계 너머
글쓴이 : 평화재…     날짜 : 13-07-01 12:16     조회 :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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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간 대화, 그 한계 너머

                                                                                   
국제정치를 주도하는 현실주의자들은 국가란 언제나 상대적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국가 간의 협력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상대적 이익이라 함은 아무리 협력을 통해 공동의 이익이 기대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이 상대의 이익보다 작게 느껴질 경우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현실주의적 입장에서도 국가는 협력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협력이라기보다는 전략적인 측면의 협력에 불과하며, 따라서 언제라도 배신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반해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 탄생한 유엔, 헬싱키 프로세스와 유럽연합의 등장, 냉전 종식 이후 늘어나기 시작한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지의 지역연합체들을 예로 들면서, 자유주의자들은 국가란 절대적 이익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들도 국가가 기본적으로 이기적 존재이며, 국제정책이 언제나 배신을 염두에 두고 수립되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단지 배신의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현실주의자들은 자국의 강한 안보를 중시하는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공동안보, 경제협력, 국제법 등 잘 설계된 제도의 구축을 중시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정말 국제관계 가운데 국가는 믿을 수 없는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신뢰할만한 협력의 파트너가 될 수는 없을까? 국제사회 속에서 열리는 국가 간 회담을 보면 그 가능성이 거의 희박해 보인다. 협상 테이블에서 국가의 대표들은 최대한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이익만을 위해 노력한다. 이는 마치 줄다리기와도 같다. 아무리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지라도 조금이라도 단기적으로 자국에게 손해가 되고 상대에게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국가 대표의 국내적 위상은 그대로 실추되고 만다. 따라서 사실상 이들의 국제적 행동은 국제사회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공개된 협상 자리에서 국가의 대표들은 기존 자신의 입장을 되풀이 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창의적 협력 방안을 제시하기가 매우 어렵다. 조금이라도 줄다리기를 벗어나 상대에게 양보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경우 국내에서 쏟아질 비난을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가 우방 국가 또는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진 국가가 아니라, 서로 전쟁을 치룬 인접 적대국인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상대는 그저 상대적, 또는 절대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때로는 사람 같지도 않은 존재로 인식된다. 만일 장기적 협력을 계획할 경우 상대가 배신할 가능성은 99.9%인 것처럼 전제된다.
  우리는 지난 6월 12일 열릴 예정이던 남북 당국회담이 수석대표의 격을 놓고 무산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남북 당국회담이 대표의 격 때문에 무산된 것도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결국 남한당국이나 북한당국 모두 자신들의 국민 또는 주민이 보기에 우리가 너무 양보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수석대표의 격 문제로 회담이 무산되기 전까지, 이미 회담 제의나 실무접촉 때부터, 남과 북은 회담의 형식 등과 같은 가시적이며 단기적인 부분에서 서로 밀리지 않겠다는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남한당국과 북한당국은 국가 지도자의 국내적 지지를 공고히 한다는 측면에서라도 당분간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문제를 놓고 서로 줄다리기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가운데 양 쪽 모두 매우 높은 배신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국의 안보를 강화하고 있으며, 서로를 향해서 자신이 원하는 제도구축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남과 북의 불신의 벽이 이렇게 높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이후 남과 북은 줄다리기를 잠시 내려놓고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협력하며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삶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바탕에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용기있는 결단이 있었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김대중 대통령은 정상회담 당시 철저한 준비뿐만 아니라 상당히 열린 자세로 협상에 임했다. 어떠한 프로토콜, 사전의제 조율도 없이 평양으로 간 그는 자신의 국내정치적 입지에 연연하기보다 한반도의 화해를 통한 전쟁방지, 평화공존, 공동번영이라는 국가의 장기적 비전을 위해 북한과의 창의적 협력을 이끌어 내었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은 지지와 성원을 보냈으며, 북한의 호응과 신뢰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후 남과 북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남북철도연결, 각종 사회문화 교류, 정기적 이산가족 상봉 등을 경험하며 이제 정말로 다시 하나가 되어 한반도에서 평화와 공동번영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잠시, 2001년 부시행정부의 등장 이후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으로 인해 안보의 위협을 느낀 북한은 결국 핵무기를 개발했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남한에서 북한과의 협력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커지게 만들었다. 2005년부터 부시 행정부 2기의 입장이 대북 포용기조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2008년 등장한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북한을 압박하면서, 남북 협력은 급격히 축소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2010년에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을 계기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협력이 완전히 중단되고 말았다. 이 가운데 남북 당국은 모두 내부지지층의 결집을 위해 상대를 강하게 비난했고, 어렵게 쌓아 놓은 서로 간의 신뢰는 모두 무너져 내렸다. 지지층을 확보하려는 당국과 언론의 노력에 따라 국내 여론도 점점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3년 현재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2기, 북한은 김정은 체제, 남한은 박근혜 정부를 맞이했지만, 이러한 상황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 간의 신뢰 프로세스를 강조하고는 있지만, 북한의 위성발사와 3차 핵실험, 핵폭격기까지 등장한 한미 합동훈련 등으로 한반도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개성공단마저 중단되는 등, 서로 간에 불신이 극에 달한 모습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제정치에서는 대부분 상대가 배신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책이 수립된다. 남북의 경우와 같이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배신을 전제하며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승리에 집착하는 국가 간 협상은 진정한 협력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특히 전쟁을 치룬 국가 사이에서 안보강화나 제도구축 만으로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이루기가 상당히 어렵다. 결국에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마음의 변화가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현 정부가 신뢰 프로세스를 이야기 하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신뢰 프로세스는 상대방에게 믿을만한 국가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처럼 먼저 자신이 상대의 신뢰를 이끌어 내야 시작될 수 있다. 물론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 지도자는 상대에게 신뢰를 주는 정책보다 상대를 적대화하여 국내 여론을 결집시키는 정책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결국 현 한반도 상황에서 신뢰 프로세스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 적에게라도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국가 지도자의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당국 간 대화의 한계를 넘어 신뢰 프로세스가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동진
평화문화연구원 원장
한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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