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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을 가능케 했던 ‘안보패러다임’의 전환
글쓴이 : 평화재…     날짜 : 13-10-01 13:20     조회 : 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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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통일교육에 대한 성찰 Ⅲ
                        독일 통일을 가능케 했던 ‘안보패러다임’의 전환

                                                                                                                        변준희

  분단과 통일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안보’는 뜨거운 감자가 되어 화두에 오르내리는 주요 주제이다. 제6차 교육과정에서 ‘통일교육’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전까지, 통일 관련 교육은 ‘반공교육’, ‘통일 안보교육’이라고 불릴 만큼 ‘안보’는 통일교육에서 강조되어 왔다. 현재도 ‘건전한 안보관’을 갖는 것은 통일교육지침서(2012, 통일부 통일교육원)에 명시되어 있는 통일교육의 목표 세 가지 중 하나로 제시될 만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동서독과 남북한의 분단은 냉전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의 대립이라는 점,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대립이라는 점, 또한  양국의 이해관련 강대국과의 긴밀한 연관성 때문에 민족 내부의 노력만으로는 통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점에 있어서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 동서독과 남북한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승전 연합국 합의에 의해 분단되었다는 점도 유사한 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서독은 가해자로서 패배한 전쟁의 결과로 분단을 맞이하였고, 남북한은 강대국들이 개입한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을 겪으며 분단이 고착화되었기에 적대감과 피해의식, 상호 견제의 정도에 있어서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즉, 한반도가 경험했던 분단의 상처는 동서독의 경우보다 훨씬 깊었기에, 그 트라우마가 공산주의에 대한 철저한 배격, 우월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지나친 상호 경쟁, 남남갈등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일도 1945~60년대 말까지의 ‘냉전기’ 동안에는 체제 간 대립과 군비경쟁만 있을 뿐 ‘협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서독 국민들은 분단의 일차적 책임 대상이라고 믿었던 소련에 대해 강한 위협감을 느꼈고 반공주의적 태도를 갖고 있었다. 이 시기 동서독 관계 속에서 서독 국민들은 통일보다는 경제적인 번영과 대외적인 안전보장을 선택하게 된다(한운석, 2003: 24). 이에 따라 냉전기의 서독은 경제적으로 강대국으로 진입하고 있었지만, 외교적으로는 미국에 의존적인 절름발이 신세였다. 당연히 동서독의 정책 또한 모두 강대국 중심의 종속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1961~2년에 발생한 쿠바사태를 계기로 동서 양진영은 냉전 체제가 계속된다면 자신들의 안보가 모두 위험하다는 통찰을 하게 된다. 즉 강대국 중심의 안보 패러다임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1960년대 말~70년대 말까지 ‘데탕트(화해) 시기’가 도래하게 된다. 데탕트는 어떤 식으로든 전쟁은 막아야만 한다는 절박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화합할 수 없었던 상이한 체제차이를 더 이상 부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이 가져온 결과였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안보 패러다임을 ‘봉쇄’와 ‘해방’ 대신에 ‘긴장완화’와 ‘평화정책’으로 전환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데탕트에 대한 서독식 해법인 에곤 바의 ‘동방정책’과 ‘빌리 브란트’의 ‘신동방정책’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동방정책의 핵심은 ‘접근을 통한 변화’로서 상대방의 생존에 대한 욕구와 불안을 감소시켜 줌으로써 점차적으로 스스로가 문을 열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을 발전시킨 정책이 신동방정책인데, 빌리 브란트는 ‘접근을 통한 변화’를 기초로 ‘포용의 원칙’을 내세운다. ‘포용의 원칙’이란 과거 서독 정부와 달리 ‘체제가 다르다’는 이유로 동독을 국제사회에서 배제시키는 외교노선을 포기하고, 오히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자는 방식으로 신동방정책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동독은 1975년 6월 1일 헬싱키 회담에서 처음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서독과 동등한 주권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특히 빌리 브란트는 ‘가까운 장래에 통일 달성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전향적인 대동독 정책을 추진하였는데, ‘1민족 2국가의 공존이 가능하다’고 하였다(신인아, 2008). 또한 그는 유럽안보회의(CSCE)를 통한 동독 및 동구권과의 관계를 지속하며 신뢰를 형성하였는데, 이것은 결국 베를린 장벽 붕괴 상황에서 미국, 서유럽 및 소련을 설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즉, 브란트의 신동방 정책은 서독의 통일 및 안보문제 접근 방식에 있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변화에 기여했던 것이다.
 
  서독의 경우를 살펴볼 때,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안보패러다임의 전환은 통일정책의 변화로 이어지고, 이것이 통일이라는 역사적 선물을 받게 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안보패러다임은 얼마나 발전해 왔는가? 학교통일교육에서 ‘안보’에 관한 교육은 과연 바람직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답은 매우 부정적이다. 여러 가지 문제점 중 가장 심각한 부분은 ‘안보문제’에 대한 보수와 진보 정권의 정치적 이용이 오히려 국민적 통합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을 전후하여 화해와 협력을 중시한 진보 정권과 대북 안보의 경각심을 중시하는 보수 정권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박찬석, 2012). 학교통일교육에 있어서도 통일교육을 실시하는 민간단체 중 한쪽에서는 평화적인 관점의 통일교육을, 한쪽에서는 안보를 강조하는 통일교육을 실시한다. 통일교육이 오히려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셈이다. 게다가 균형적이고 발전적인 안보관을 제시해야 할 정부차원의 통일교육은 집권당이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안보’에 대한 교육 내용을 달리한다. 매우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평화와 안보 문제에 대한 상이한 입장을 재생산해내고 있는 우리의 안보패러다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안보’에 관한 교육에 있어서 또 다른 문제점 중 하나는 ‘안보문제’를 보는 시각이 근시안적이라는 점이다. 학교통일교육에서 이루어지는 ‘안보’ 관련 주제는 ‘6.25’전쟁과 ‘천안함·연평도’와 같은 북한 도발사에 한정될 때가 많고, 급변하는 국제정치 상황이나 안보환경의 변화에 대한 주제는 등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통일교육이 통일교육지침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미래지향적 통일관’을 제시할 수 있으려면, 안보문제를 접근함에 있어서도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이라는 지식전달 수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가 처한 국제상황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안보환경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통일교육에 있어서 ‘안보’가 북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의 안보의식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발전해 가야 한다. 남북한의 아픈 과거사를 되돌아보는 수준을 넘어서서, 동아시아 4대 강국 속의 한반도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진보나 보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안보관을 넘어서, 양 측의 입장을 통합할 수 있는 혁신적인 안보패러다임이 제시되어야 한다. 어쩌면 독일의 경우처럼, 안보패러다임의 전환은 한반도의 통일을 앞당기는 방아쇠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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